한국에서 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종교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개수도 너무 많을뿐더러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의 구분도 어렵고, 전통종교, 현대종교, 기성종교, 신종교, 민족종교, 민중종교, 자생종교, 외래종교, 유사종교, 사이비종교 등등 종교를 유형적으로 분류하는 문제도 만만찮다. 현재는 세계적으로 무종교인구의 비율도 늘어가는 추세에 있으므로 한국도 이러한 현상을 감안한다면 종교이해는 그야말로 융•복합적인 학문을 총동원해야할 정도이다.
원래 종교이해를 위한 종교학이 인문•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원용하여 탄생한 역사가 짧은 학문이지만 이에 반해 종교의 역사 그 자체는 이미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인간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으로서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그 고유한 종교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반만년의 역사 동안 반도가 지닌 지정학적 특징으로 인해 대륙과 해양의 문화가 고루 수용되고 융합된 측면이 있다. 종교문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중국대륙으로부터 수입된 종교와 해양을 통해 유입된 종교들이 한반도에서 뿌리내리는 과정을 통해 한국적 변용을 거쳤으며, 또한 한국의 원형적 사고를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종교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형성된 다양한 종교해석과 표현양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종교 이해는 그 속에 융합된 여러 종교전통을 발견하고 그 종교창시자의 해석적 특징을 도출해 내는 작업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적 희열을 가져다준다.
‘증산사상’은 이제 하나의 사상을 넘어 현재 한국의 종교문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영역이 되고 있다. 강증산(1871~1909)이라는 분이 한국에 탄생한지 어언 152년이 지나고, 그동안 증산을 신앙하는 교단은 생겼다가 없어진 것까지 합하면 대략 130여개에 달할 정도로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700만에 달하는 신도를 거느린 교단도 있었다. 이른바 한국의 근대종교, 민족종교, 민중종교, 신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종교사라면 반드시 포함되는 종교계가 바로 증산교단이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교육, 문화, 의료, 사회복지 전반에 걸쳐서 두각을 드러내는 교단도 있다. 어떻게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의 신토불이 종교라고 부를 정도로 증산종교운동은 이제는 한국종교사회의 주요한 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증산사상은 한국의 ‘자생종교’라는 명칭도 사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증산사상에 관한 이해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신종교로서 기성종교에 비해 역사가 짧은 반면, 그 사상에 녹아있는 종교전통은 거의 반만년 한국종교사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서 그 사상적 맥락을 추적하기에 너무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종교사에는 대륙으로부터 수입된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전통 삼교가 있고, 민간신앙, 무속, 비결 등의 토속종교 그리고 근대의 신종교와 서학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단군신화나 풍류도와 같은 고유사상도 원형적인 측면에서 논의되지만 종교현상의 측면에서는 구분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증산사상의 이해를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종교전통들을 두루 섭렵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로 증산의 친필경전으로 알려진 ‘현무경’과 증산의 초기 종도들의 증언을 수집하여 편찬한 ‘대순전경’의 내용은 그 분량에 비해 종교 문화적 융합이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오늘날 이와 같은 증산사상의 경전을 탐구하고자 하는 학자는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심정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희생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약도 없는 끝없는 여정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나가야만 한다.
『증산사상과 한국종교』라는 대작을 출판한 김탁 박사는 아마도 이러한 학자의 운명을 감지한 사람처럼 증산사상 연구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분 같다. 김박사의 이전 저작들도 있지만 이 책 전반에 걸쳐 논술하고 있는 증산사상 연구는 한국종교사 전체를 속속들이 뒤져서 도저히 일반 학자가 미칠 수 없는 세부항목들을 밝힌 것이다. 특히 이 분야의 연구자이기도 한 필자가 독서과정에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의 종교전통을 이해하는 것도 지난한 과제인데 다양한 종교전통의 본질적인 것들이 증산사상을 규명하는데 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학식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증산의 언설 중에 “가장 두려운 것은 박람 박식(博覽博識)이니라”고 하였는데 김탁 박사는 이렇게 필자를 두렵게 하기에 충분한 분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크게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한국종교사에서의 유교와 증산교의 만남, 2 한국종교사에서의 불교와 증산교의 만남, 3 한국종교사에서의 도교와 증산교의 만남, 4 한국종교사에서의 증산교와 민간신앙의 만남, 5 한국종교사에서의 동학과 증산교의 만남, 6 증산 강일순이 인용한 한시 연구, 7 증산이 인용한 고전 구절 연구가 그것이다.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증산사상에서 인용되고 있는 유불도 전통삼교는 물론 토속종교와 동학 그리고 한문고전을 총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증산의 말씀’은 그 말씀이 처해있던 사회적, 역사적 문맥 속으로 이전되어야 비로소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의 경전에 대한 올바른 해석학을 지향하고 객관적인 문헌비평을 시도하는 일은 그 종교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와 이상적인 믿음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출발한 저자의 연구는 결국 한국종교사 전체를 파헤치는 무모한(?) 도전을 하였고, 급기야 64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증산사상이 진정 한국종교를 대표하는 하나의 축으로 나설 수 있다면 김탁 박사의 이 저작이 기여한 공은 결코 간과될 수 없으리라 본다. 한국종교가 궁금한가?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경원(대진대학교 교수, 한국신종교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