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족종교의 ‘맏형’으로서 자리매김해 온 천도교. 시천주・인내천(侍天主・人乃天)사상을 중심으로, 조선왕조 후기 사회의 정국 문란과 전제 봉건주의, 외세에 항거했던 동학운동의 사상적 밑거름이 된 한국 최초의 신종교를 말한다.
사실 천도교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환기마다 민족운동과 더불어 사회 문화운동에 등장함으로써 큰 역할을 해온 신앙공동체였기에 종교적 시각으로만 제한해 간단히 풀이하기엔 쉽지 않다.
동학운동의 사상적 토대, 천도교
천도교는 제1세 교조 수운 최제우가 1860년 자신의 고향인 경주에서 겪은 종교적 체험을 시작으로 생겨난 동학에서 출발했다.
|
대담에 앞서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는 이정희 교령. |
우선
,
최제우는 동학을 조직화하고 교도들을 교육하기 위해 교리적으로 주문공부와 수도방법
,
여러 의례규정 등을 마련해 동학을 신앙공동체화 하는데 주력했다
.
이어 수운으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은 해월 최시형은 동학을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해 가면서
1894
년 동학농민운동에 앞장섰다
.
이처럼 천도교는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를 제
1
세교조로
,
동학운동을 주도한 최시형을 제
2
세교조로
,
동학을 천도교란 이름을 개칭해 교단의 법통과 조직을 정비한 의암 손병희를 제
3
세 교조로 일컫고 있다
.
수운의 호칭인 대신사
,
해월의 신사
,
손병희의 성사는 모두 의암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교조들의 권위와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부여한 것이다
.
천도교에서 신앙대상은 하느님이나 하나님
,
한얼님이 아닌
,
오로지
‘
한울님
’
이다
. ‘
한
’
은 크다는 의미이고
‘
울
’
은 우리
(
울타리
)
를 뜻하는 동시에 무궁무한의 우주를 의미한다
.
이와 관련
,
이정희
(71)
교령은
“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선 교조인 나조차 믿지 말고 오직 시천주 한울님을 믿으라
”
고 했다며
“
네 마음 안에 한울님이 있으며
,
사람들이 하는 일 모두가 한울님이 감응한 결과라는 말씀을 했다
”
고 말했다
.
이는 수운 최제우를 신앙대상화하고 있는 여느 동학계열의 민족종교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
지난
4
월 취임한 이정희 교령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공주대를 나와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고 공주대
・
한남대의 객원교수를 거쳐 천도교 종학대학원장을 지냈다
.
천도교의 신앙대상은 오로지
‘
한울님
’
현재 천도교 경전으로는 수운 최제우의 종교체험을 주요 내용으로 엮은 동경대전
,
용담유사를 비롯해 해월신사법설
,
의암성사법설 등이 있다
.
특히
,
천도교의 4
대 기념일은 천일
(
天日
)
기념일
(
4
월
5
일
),
지일
(
地日
)
기념일
(
8
월
14
일)
,
인일
(
人日
)
기념일
(1
2
월
24
일
), 도일(道日)기념일(1월18일)
이다
.
이 중 수운 최제우가 도의 깨우침을 얻을 날을 기리는
‘
천일기념일
’
을 천도교에선 실질적인 창도일로 삼고 있다
.
|
천도교의 주요 성지인 경주 용담정의 모습. |
천도교는 주요 의례로
‘
오관제
(
五款制
)’
라는 게 있다
.
이는 교인이면 누구나 실천해야 할 의무 사항으로 주문
(
呪文
),
청수
(
淸水
),
시일
(
侍日
),
성미
(
誠米
),
기도를 말한다
.
주문은 이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
지기금지원위대강
(
至氣今至願爲大降
)’
이라는
8
자의 강령
(
降靈
)
주문과
‘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사지
(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 13
자로 구성된 본주문이 있다
.
강령주문의 뜻은
‘
천지에 가득찬 한울님의 지극한 기운과 내 몸의 기운이 하나가 돼 소통하게 해 달라
’
는 말이고
,
본주문에 담긴 뜻은
‘
한울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합하여 안정되게 해 주시고
,
한울님의 이치를 잊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의 이치로 알 수 있는 깨달음을 얻게 해달라
’
는 것이다
.
이
21
자의 주문 속에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인 교의가 간결 명료하게 담겨 있다고 믿는다
.
또
,
시일
(
侍日
)
은 매주 일요일 오전
11
시에 모든 교인이 교당에 모여 심고
(
心告
)
와 함께 경전봉독
,
천덕송을 합창하는 의식을 갖는다
.
이는 마치 개신교의 일요일 예배가 연상된다
.
청수는 천도교의 모든 의식에
‘
깨끗하고 맑은 물
’
한 그릇을 차려 놓는 예법으로
,
교인 가정은 매일 밤
9
시에 가족들이 모여 청수를 모시고
21
자주문을 묵송하는 기도식을 갖는다
.
그리고 천도교의 핵심 교리 즉
,
종지
(
宗旨
)
는 시천주
(
侍天主
)
개념에서 비롯된 인내천 사상이다
.
이를 천도교에서는
‘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시천주하고 하니
,
세상 사람 모두가 한울님을 안고 있기에 사람이 곧 한울님
’
이라는 것
.
종교의례 중
‘21
자 주문
’
이 가장 중요
한편
,
천도교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 3
・
1
독립운동선언에 참여한 민족대표자
33
인 가운데 의암 손병희를 필두로 천도교인
15
명이 포함돼 있다
.
이처럼 천도교가
3
・
1
운동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는 데는 당시 천도교의 막대한 인적 물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
실제로 당시 민족 대표
33
인 중 감리교인
9
명
,
장로교
7
명
,
불교가
2
명이었던 것에 비해 천도교는 절반 정도였던 것이다
. 3
・
1
운동 준비단계에서 거사 대금으로
5
천원을 지원했다
.
당시 천도교인들의 수가
300
만명이 넘는다고 박은식의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에 기록돼 있다
.
이에 이정희 교령은 지난 취임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대도중흥의 길을 닦아 교도
300
만명이 넘는 대교단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이를 위해 이 교령은 현재의 교단의 총부 개혁 없이 천도교의 미래를 없다고 보고
,
비장한 각오로 교단 구성원들의 의식과 풍토
,
시스템을 개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특히
,
교헌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해 현재의 선거제인 교령 선출방식을 추대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
단임제인 현 교령제로선 중
・
장기적인 교단의 발전을 위한 전략 수립은 물론
,
집행해나기 위한 기반조차 갖추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
|
주요 종교의식 중의 하나인 청수봉전식의 장면. |
현재 천도교의 조직은 포교자와 피포교자의 관계로 엮어진 연원제와 중앙에서 지역단위로 연관된 교구 행정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
연원제 조직은 정신적 지도 기구이고 행정조직은 중의제에 의한 민주적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고 있다
.
대표기관은 중앙총부로
,
중앙집권체제로 하는 교령사
(
敎領司
),
현기사
(
玄機司
),
종무원
,
종의원
,
감사원 등이 있다
.
중앙총부의 최고 의결기관을
3
년마다 개최되는 전국대의원대회다
.
여기서 교회의 대표인 교령을 비롯해 종의원 의원
,
중앙감사 등 주요 교직자를 선출하고 있다
.
조직은 이원제
‘
연원제
’
와
‘
전국 행정조직
’
천도교는 한때 남북 분단을 놓고 이념적 사상적 질곡을 안고 있는 교단이기도 하다
. 1961
년부터
2
년간 남한의 외무부 장관을 지낸 최덕신 전 교령이
1986
년 북으로 넘어가 큰 파란을 겪은 바 있고
,
올 초 최덕신 교령의 부인인 류미영 씨가 생존하고 있어
95
세 생일을 북한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
더욱이 그의 차남인 최인국 씨는 남한에 남아 여전히 남북교류문화 사업 등을 펄치며 민간차원의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가교역할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에 이정희 교령은
“
쇠운이 지극하면 성운이 온다는 말이 있다
”
며
“
지금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한자리로 돌아와 천리의 운세가 이 한반도에 자리잡을 때
”
라면서
“
이 난세에 민족통일과업에 천도교가 적극 앞장서야 한다
”
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를 위해 이 교령은 북측 천도교와 연대
,
소통하면서 남북통일 시대를 열 지도자 양성기관인 민족통일대학을 설립하겠다고 덧붙였다
.
최근 전북 정읍시장이
3
・
1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 민족통일 선도하기 위한 민족통일대학을 건립하는데
3
만평 규모의 부지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고 이 교령은 말했다
.
더욱이 올해 들어 정부가 서울 중구 서소문공원을 보수해 천주교 성지 중심으로 하는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려는 사업에 대해서도 천도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
이를 위해 천도교는 올 초 중앙총부 주축으로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
천도교는 정부의 서소문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은 천주교만을 위한 선교 사업으로 보인다며 서울시와 중구청
,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은 공정치 못한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이와 관련
,
이정희 교령은
“
서소문공원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것은 사실이나
,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 갑신정변
,
동학운동
, 3
・
1
운동과 관련된 인물들이 처형된 민족운동의 성지이자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
고 설명했다
.
현재 이 사업엔 정부가
50%,
서울시
30%,
중구청이
20%
지원계획으로 총
460
억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서울 서소문 지역은 민족운동의 성지
현재 한국종교인평화회의
(KCRP)
가입 종단인 천도교는
‘
한국종교연합
’
을 결성해 이웃종교간 교류와 대화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이에 종교간 대화와 종교평화에 대한 천도교의 견해를 묻자 이 교령은
“
현대 지식정보 산업사회는 다종교 다원화 시대가 분명하고
,
종교 간의 대화는 필수적이라며 고대 역사시대부터 종교인들이 왕사 역할을 해왔듯
,
현 시대에도 국가 최고 지도자의 스승으로서 특정 종교의 지도자 역할만이 아닌
,
이 시대의 스승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
고 말했다
.
|
서울 경운동 중앙대교당(왼쪽)과 중앙총부 건물인 수운회관의 전경. |
천도교의 주요 성지로는 경주 구미산 자락에 있는 용담정과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생가터 등이 있다
.
서울 우이동에는
3
・
1
독립운동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의암 손병희 성사가 세운 봉황각도 남아 있다
.
산하기관으로 청년회
,
여성회
,
종학원
,
동학민족통일회 등이 있으며 월간지
‘
신인간
’
과
‘
천도교 월보
’
를 간행하고 있다
.
현재 천도교의 주요 종교행사와 더불어 시일식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 종로 경운동에 있는 중앙대교당은
1920
년대 붉은 벽돌로 건축된 것으로 당시 명동성당
,
조선총독부청사와 함께
3
대 건물중 하나였다
.
수운회관은
1971
년 건립된 수운회관은
15
층 건물로 현재 일부 공간은 중앙총부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고
,
나머지는 대부분 임대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천도교는 한국 근
・
현대사의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 남북분열저지운동 등으로 연관된 남북 간 헤게모니 쟁탈전의 한가운데 있던 종교로 인식돼 온 점도 사실이다
.
하지만
,
최근 천도교를 보면 이제 역사로 기록된 텍스트로 인식된 종교가 아닌
,
신앙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이와 관련해 이정희 교령 역시 취임사에서
“
전체 교인들의 신앙심을 더욱 두텁고 깊게 할 수 있도록 수련의 새 기운을 대대적으로 일으킴으로써 수도의 기운이 충만한 신앙의 힘과 포덕의 역량을 길러내는 신앙중심교회를 만들어 가겠다
”
고 포부를 밝혔다
.
종교간 대화와 교류
,
적극적으로 나설 것
이처럼 천도교는 과거 사회 정치적인 포교 형식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신앙체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단의 진로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
대도중흥의 시대
,
즉 무극대도를 펼쳐
300
만 교인시대를 개창하겠다는 천도교
.
21
세기
,
물질보다 정신문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범신론적인
‘
한울님
’
사상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식개혁운동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천도교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
이건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