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승 교수 |
2011년 한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갔으나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함에 따라 ‘불발’로 그치는 등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재적 236석 중 찬성 221표로 가결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북한 당국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해 왔다. 그럼에도 이중 삼중의 감시 통제 장치의 발동으로 그 구체적 실상이 외부에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바로 이때부터 식량난의 악화와 더불어 생존을 위해 중국 등으로 탈출하는 북한 주민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심각한 인권 침해 상황이 하나둘 국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마치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제 북한의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는 ‘강 건너 등불’과 같이 그저 팔짱만 끼고 바라볼 성질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인류가 큰 관심을 가지고 반드시 그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할 ‘지구촌 국가 모두의 보편적 인권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월1일 새해 벽두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던 한 북한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을 함으로써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특히 이 사건은 이제는 해외 파견 노동자들까지 인권 유린이 심각함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북한인권법’이 채택된 것이다. 이로써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해 유엔 세계 인권 선언 등 국제인권 규약에 규정된 ‘자유권 및 생존권을 추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인권기록센터’를 통일부 내에 설치해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 파악과 인권 증진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훗날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법은 정부가 북한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남북 인권 대화와 인도적 지원 등 북한인권 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 개발 등을 수행하기 위해 ‘북한인권재단’을 설립, 운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제까지는 미국이나 일본 등 이미 ‘북한인권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오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입장에서 임해 왔다. 하지만 이제 조직과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보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밖에도 이 법은 남북 관계 발전 노력을 비롯한 ‘북한인권증진 기본계획’의 수립, ‘남북인권대화’의 추진,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의 통일부 내 설치, ‘북한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 등을 규정하고 있어 앞으로 개선 방안 도출에 적잖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서독은 분단 당시에 ‘잘츠기터(Salzgitter) 중앙기록보관소’를 설립해 동독이 자행한 온갖 인권 유린 실태를 기록하고 보존했다. 이제 인권 침해와 유린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인 북한 주민 스스로가 ‘자신들의 존귀함’을 깨닫는 수순이 남았다.
강석승 초빙교수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