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웅 원장 |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환경이 대단히 어지럽다. 전문가들도 과거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남북한 관계가 군사적 분쟁으로까지 치달으면 어찌될까. 자칫 북한이 잘못 판단을 해서 핵전쟁이 일어나면 이 땅은 잿더미가 될 판이다. 북한은 이제 중국이나 러시아,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면서 미국만 상대하려고 한다.
북한의 속셈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 주한 미군을 철수시켜 베트남을 공산화한 전례를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누구도 시원스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남북한이 직접 당사자로서 공멸의 길을 걷지 않도록 책임 있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사이가 나쁠수록 더욱 서로 사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평화 정착과 통일을 향한 노력은 더욱 기울여야 마땅하다. 지금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해서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북 관리 전략이나 지역 정세의 안정을 도모하는 큰 그림 역시 절실하다. 이는 지역의 관련국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핵전쟁은 직접적인 위험이나 피해의 차이가 있을 뿐, 공동 재앙이라는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와 국제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남북한 관계는 국제 공조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보다 당당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주도적인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 가야 한다. 우리가 실효성 있는 비전과 정책들을 먼저 입안해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말로 우리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 공간을 넓힐 수 있는 방책이다.
지난 날 북방정책이 남긴 발자취는 정말 컸다. 먼저, 북한을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규정해서 남북한이 균형적으로 발전해가자는 1988년 7.7 선언은 그 출발점이었다. 연이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천명(’89년), 남북 기본합의서 도출(’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92년) 등이 나왔다. 1989년에는 헝가리를 시작으로 공산권과의 외교관계가 이뤄지면서 이듬해에는 소련, 2년 뒤엔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 시점에서 제2의 북방정책, 신 남방정책을 발전적으로 가동해보면 어떨까.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남북이 추진해 왔던 모든 합의를 종합 점검, 실행 기반을 확보해 가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리라고 본다. 바람직하기로는 이 과정에서 어렵지만 남북이 당사자로서 북한 핵문제를 잘 풀어 나가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와 중국 등을 비롯, 국제기구들과 협력해 △자원·에너지 △교통·물류 △산업별 공동 진출을 모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러한 다자간 교류 협력방안은 평화 통일로 가는 출구와 북한 핵·미사일의 해법을 동시에 풀어가는 여건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돈은 있을 때 쓰고, 쓸 때 제대로 써야 한다. 우리의 경제력에 버금가는 외교력이 난국을 이겨내는 요체다. 늦게나마 남방정책이 주요 외교 전략으로 채택된 것은 다행이다. 우리가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과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협력을 크게 강화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러시아와 전략적 유대를 굳건히 하는 과제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외교 지평은 넓을수록 좋다. 우리가 대외 전략에서 복안의 시각을 갖추는 일은 생존 문제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김경웅 원장 (한반도통일연구원·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