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영 교수 |
요즈음은 나를 중심한 경계선을 너무 펼쳐서 우리라는 공동체의 입장이 많이 쇠퇴한 것 같아 아쉽다.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는 모두 공동체를 강조했다. 밥상공동체라는 말까지 펼치면서 모든 국민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자고 외쳤고, 또 행동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점차 공동체의 마음과 행동은 사라지고, 각 이익단체들의 목소리만 집회로서 드러나는 것 같다.
필자는 대학에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문화를 경험했다. 오래 전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을 같은 기숙사 공간에서 살도록 하면서 생활 지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숙사에서 생겼던 문제 중의 하나가 한국 학생이 일본 학생의 소지품을 자기 멋대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학생들은 소유관념이 분명했고, 자신의 것과 타인의 것을 정확히 구분하는데 한국 학생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령 냉장고를 공동으로 사용하더라도 소유관념이 분명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일본 학생들은 냉장고를 반을 나눠서 한 사람이 반쪽을 쓰고 다른 사람이 남은 반쪽을 썼다. 자신의 물건만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물건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당시에 통닭을 배달로 시키면 사람 숫자대로 통닭 값을 10원까지 정확히 계산해 나눠 분담했다. 이런 식으로 정확히 나의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을 구분하고, 분명히 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 줬다. 나와 남의 경계선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경계선이 분명한 것은 그들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왠지 인정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반면에 한국 학생들은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았다. 냉장고를 둘이서 쓸 때, 서로 경계가 별로 없고 서로 나눠 먹었다. 김치를 엄마가 해줬다고 나눠 먹고, 맛있는 과일을 넣어뒀다가 서로 나눠 먹었다. 서로 집에서 보내준 것을 먹기도 하고, 사놓기도 하면서 살았다.
말도 하지 않고 다른 학생의 비누나 화장품을 가져다 쓰기도 하고, 룸메이트의 좋은 옷을 먼저 입고 나가기도 했다. 마치 동생이나 언니가 다른 자매에게 하듯이 예쁜 옷을 말도 없이 입고 외출을 했다. 서로 말이 없이 그랬다는 다툼을 하면서도 서로 상대의 옷을 빌려입었고, 서로 양해가 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느낄 때는 ‘너는 네 것도 너의 것이고, 내 것도 너의 것이냐?’면서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지내면서 인정을 쌓았고, 좋은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나와 남과의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은 면에서는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가족’처럼 서로의 입장을 배려해 주는 모습들이었다. 마치 형제자매가 서로 싸우면서 도와주고 서로 손해 보면서도 힘이 돼 주는 ‘가족공동체’와 같았다.
하지만 요즈음 학생들과 한국의 문화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주택 구조가 달라지고, 핵가족이 생기고, 컴퓨터와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각종 인권 관련 보호법들이 생기게 되고 너와 나 사이의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됐다. 그 결과 학생들 간에도 경계선이 너무 분명해지고 이기주의로 흐르는 것 같다. 너는 너의 것, 나는 나의 것이라는 입장이 강해지면서 ‘우리의 것, 공동체의 것’이라는 문화가 사라지는 것 같다.
각종 집회와 시위가 벌어지는데 각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회 같다. 종교계, 노동계, 정치계, 시민 사회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집회만을 하는 것 같다. 내 것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의 아픔은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남을 위한 배려는 내가 아니라 남들이 해야 하거나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작 알아서 하려는데 전혀 협조하지 않아서 각종 일의 해결이 미뤄진다.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것이 조금 희생되더라도 나누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모두 자신들만 옳은 것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금 더 넓고 큰 입장, 대국적인 입장에서 ‘우리, 공동체’를 보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좋겠다.
오규영 교수 (선문대학교·가족상담치료전공)